Friday, November 22, 2024

니케아 신경의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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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주의는 325년에 정죄를 받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경배의 태도보다는 파악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에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들이 여러 가지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을 본다. 유니테리언이나 여호와의 증인이 그 예가 된다. 믿음과 경배의 태도를 취하지 않고 파악하려는 태도를 취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들을 수 없고 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바르게 경배를 드릴 수 없다.

요즈음에는 아리우스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은 아리우스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아타나시우스의 고집스러운 점을 낮추어서 말한다. 그러한 주장이 학계를 지배하고 신학교를 지배하면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이 악화되고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없어진다. 요즈음에는 이단들만이 아니라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합리주의적이고 감정적인 성경 해석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니케아 신경을 바르게 번역하여 사용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잘 드러내는 일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동방교회와의 연합을 시도하면서 니케아 신경을 고백하도록 회원 교회에 권고하였고, “신앙과 직제문서 153번으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십년 공동 작업의 결과로 나온 이 문서는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러나 죄와 구속에 대한 해석이 매우 약화되어 있다.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신에 대한 고백도 만물에 생기를 주시는 분을 강조하고 살려주는 영으로서 죄인을 회개시키는 일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죄 사함을 위한 하나의 회개에 대하여서는 본 신조는 죄사함을 위한 성례로서 세례를 강조한다. 이로써 본신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세례를 새로운 삶의 시작, 혹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오직 한 번 일어나는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의 시작에 관계된 것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권고’(exhort)하고 있다고 해설한다. 세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대신에 회개를 새로운 삶의 시작에 관계된 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권고한다고 하였다. 죄에 대하여 이렇게 무디게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매우 약화시키고 사실상 부인하는 일이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교회에 대한 고백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과제임을 이러한 데에서 볼 수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그의 백성들에게 이 질문을 하시고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신다. 그릇된 기독론에 기초하여 거짓된 교회 통일에 대한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고백을 항상 새롭게 하면서 전진해야 한다. 역사적인 환경은 달라졌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항상 고백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신앙고백이 무시하거나 오용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칼빈이 니케아 신경의 작성 배경에 대하여 말한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아리우스가 일어났을 때에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공회의는 그 권위로 저 불경건한 자의 악한 노력을 분쇄해서, 그가 흔들어 놓은 교회들의 평화를 회복하였으며, 또한 그의 신성모독적인 교훈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주장하였다. 그 후에 에우노미우스와 마케도니우스가 새로운 소동을 일으켰을 때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그들의 미친 생각에 대해서 대책을 강구하였다. 에베소 공의회에서는 네리토리우스의 불경건한 주장을 넘어뜨렸다. 사탄이 흉계를 꾸밀 때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런 방법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는 것이 통례였다.

니케아 신경의 현대적 의의

니케아 공의회와 니케아 신경

고대 교회가 예배와 세례식, 그리고 이단에 대한 대처를 하면서 교회들마다 느슨한 형태의 신조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동방교회에서는 아리우스(c.260-336)의 그릇된 주장 때문에 두 차례의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그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갔다.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것을 확정하였고, 3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둘째 공의회에서는 성신의 신성을 고백하면서 삼위일체에 대한 고전적인 고백을 작성하였다. 사도신경에도 성자와 성신의 신성이 함축되어 있지만, 니케아 신경에서는 성자와 성신의 신성이 삼위일체적인 고백 안에서 더 명료하게 진술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두 차례 공의회를 중심으로 작성 배경을 살펴보겠다.

1) 초기 이단들

성자와 성부의 관계, 혹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는 고대 교회에서 가장 먼저 씨름한 문제였고, 이것과 더불어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가 2세기 말부터 정교하게 전개되었다. 삼위일체에서 하나를 강조하거나 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뉘었다.

먼저 하나를 강조하는 입장으로는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sm)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sm)이 있다. 역동적 단일신론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나 부활할 때에 신적 능력’[역동]이 역사(役事)하여서 성자가 성부의 양자(養子)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양태론적 단일신론 안에도 다양한 주장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성부 수난설사벨리우스주의이다. 성부 수난설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친히 사람이 되어서 수난을 받았다는 주장인데, 교회으로 재직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을 전개하였던 칼리스투스(218-23/24, 교황 재위)의 사망 이후 로마 교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좀 더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벨리우스주의이다. 사벨리우스는 한 분 하나님이 세 양태로 나타났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이집트에서 강력한 영향을 끼쳤고, 그는 하나님의 단일성을 주장하려고 동일 본질’(homoousios)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는데, 안디옥 학파의 견해에 근접하였고, 이집트에서 유행하던 양태론을 비판하였다. 그는 그리스의 철학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의 철학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의 생각으로는, 최고의 신이란 보이지 않는 분이고 자기의 본질을 다른 존재에게 줄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나셨다는 것을 그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로고스가 무에서부터 가장 먼저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간 단계에 있는 그 로고스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피조물인 로고스는 시작이 있었고, 사람보다는 우월하고 사람을 초월하지만 하나님보다 열등하고 하나님은 아니었다.

아리우스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드로스였다. 그런데 아리우스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사람은 그를 수행하여 회의에 참석한 아타나시우스(c.299-373)였다. 그는 구원론적인 관심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려고 하였다. “만일 성자가 피조물이라면…. 피노물이 피조물을 도울 수 없다. 피조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천명하였다.

2) 니케아 공의회(325)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의 주장은 그 지역에서 큰 소요를 일으켰다. 그 결과 323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회의가 열렸고, 아리우스의 출교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회의로 말미암아 교회 내의 분열만 더 커진 셈이 되었다.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306-337년 재위) 황제는 제국의 분열을 막으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제국 내의 모든 감독을 초청하였다. 스페인 감독 오시우스(257-357)의 제안으로 황제는 국고에서 여행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자기의 여름 휴양지인 니케아에서 제1회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소집하였는데, 제국 감독의 1/6에 해당하는 약 300여 명의 감독이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회의에 대한 자료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한 세대 후에 아타나시우스가 쓴 것이 있고,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가 회의의 과정을 교회들에게 알리려고 보낸 편지가 있다. 에우세비우스는 자기가 세례를 받을 때에 고백하고 또한 감독으로서 교리문답에서 가르친 내용이 니케아 회의에서 논의되었다고 하였다. 세례식과 그것을 위한 교리문답 공부가 니케아 신경의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3) 니케아 신경과 그 특징

니케아에 모인 감독들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한 많은 논의 끝에 다음과 같은 신경을 채택하였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성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한 분 주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성부의 독생자를 믿습니다.

그분은 성부의 본질에서 나셨고,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나님에게서 나신 참하나님,

나셨으나 창조되지 않으셨고 성부와 동일 본질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만물이 창조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셨고,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고,

또한 고난을 받으셨고

사흗날에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성신을 믿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

나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자들,

무에서 나서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자들,

혹은 다른 실체(휘포스타시스)이나 본질(우시아)에서 나셨다고 주장하는 자들,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되거나 변화되거나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

그러한 자들을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는 정죄합니다.

325년의 니케아 신경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자들도 대부분 서명을 하였고, 아리우스와 다른 친구 두 명만 서명하지 않아 파문되었다. 그러나 동방 감독들은 호모우시오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양태론자들이 그 용어를 사용하였고, 성자 하나님이 성부에게 종속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후에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었고 381년에 그 의미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325년의 니케아 신경에서 다음의 몇 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아타나시우스는 구원론적 관심 때문에 아리우스의 철학적 설명을 비판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성자가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이라면 우리의 구원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에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르쳤다. 그는 “말씀의 성육신”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의 신격화(神格化 theopoiesis)를 위한 것인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 혹은 비슷한 존재를 주실 수 있으므로 우리의 구세주는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니케아 신조에서 밝힌 것처럼, “그분은 우리 인생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셨고,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고백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고 다른 주장, 특히 아리우스의 주장에 대하여서는 파문의 말을 붙여 두었다. “그런데 그분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 나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자들, 무에서 나서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자들은 바로 아리우스주의를 겨냥한 말이었다.

셋째, 성자와 성부가 동일 본질임을 밝혔으나 어떻게 양태론과 구별이 되는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호모우시아라는 말에 양태론의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가장 먼저 서명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서명하기를 강권하였다. 그들은 황제의 말을 듣고 325년 신경에 서명하였지만, 그 신경은 우시아휘포스타시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고, 따라서 양태론으로 오해하기 쉬웠다.

넷째, 성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충분하지 않았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 본질이라고 고백하였지만 성신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한 문장으로 급하게 마쳤다. 그 후에 성신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발생하였는데, 381년 신경에서는 이 점을 보완하였다.

성자와 성신에 대한 고백은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고백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신 분은 성부가 아니고 성신도 아니고 오직 성자였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삼위일체의 위격들에 대한 더 명료한 용어가 필요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후 50년간 삼위일체의 신비를 표현할 용어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리폼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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