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2, 2024

[강태광의 기독교 문학 산책]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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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이웃 일본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둘이나 배출했는데 대한민국은 아직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일본에 낙후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예술, 문학 분야의 낙후를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에 한국인이 없다는 것이 몹시도 아쉽습니다. 속히 한인 작가가 노벨 수상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인 작가 작품 중에 노벨 문학상 추천작이 많지 않습니다. 한인 작가 작품 중에 100쇄를 돌파한 문학 작품들도 많지 않습니다. 한국인 원작 소설로 100쇄를 돌파한 작품은 ‘광장(최인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그리고 ‘당신들의 천국(이청준)’뿐입니다.
‘당신들의 천국’은 ‘신동아’에 연재되었고, 단행본(1976) 발간한 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슬픈 섬 소록도에 있었던 실제 사건들이 모티브가 된 소설입니다. 굴곡진 한국 근대사에 숨겨진 아픔을 토해내는 수작(秀作)입니다.


작가 이청준은 “서편제”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작가입니다. 이런 작품들에 비해 약간 덜 알려진 작품이긴 하지만 “당신들의 천국”은 개발시대의 아픔을 잘 묘사한 작품입니다. 김천혜 부산대 명예 교수는 “특히 ‘당신들의 천국’ 같은 작품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 환자의 소록도 병원 안에서 야기된 병원장과 환자의 갈등을 다룹니다.


이청준이 작품 활동을 주로 했던 시대는 전후 복구 그리고 산업화, 근대화, 새마을운동으로 대변되는 개발시대입니다. 625를 통해 얻는 반공의식 그리고 복구를 위한 개발을 빌미로 억압이 있었고, 체제경쟁과 이념갈등이 있었던 암울한 시대입니다.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이런 시대적 아픔과 개인의 고민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권력부패, 그 권력에 아부하는 대중들, 그리고 시민들의 살아있는 저항정신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수용된 섬 소록도에 군의관 조백헌 대령이 병원장으로 부임합니다. 병원장이지만 그 섬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들의 삶을 돌보는 일종의 행정관 역할도 겸합니다. 군복에 권총을 차고 부임한 조원장(대령)은 의욕적입니다. 나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삶에 무기력한 환자들을 위해 조원장은 여러 활동들을 벌이다 마침내 섬에 간척 사업을 벌여 스스로 농사 지어 먹을 것을 자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착안합니다.


조백헌 원장은 이를 위해 환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간척사업을 시작하지만 그것은 자연과 싸움이기 이전에, 환자와 원장의 싸움이고, 인내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는 원생들을 위한 천국을 그 섬에 건설하겠다고 천명했지만 그의 큰 꿈에 대한 원생들의 반응은 너무 냉랭했습니다. 조원장 의도를 의심한 것입니다. 이유는 과거 원장들과의 아픈 경험들 때문이었습니다. 원생들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들도 조원장을 믿지 못했습니다.


과거원장들도 조원장처럼 의욕적이었습니다. 그들도 조원장처럼 원생들의 천국을 만들겠다고 호언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야욕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명예심과 과시욕 가득한 그들의 천국을 건설하려했습니다. 원장들은 환자들 천국을 건설한다며 원생들을 혹사시켰고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원생들은 그 권력에 빌붙어 서로 배신하고 반목하였습니다.


원생들이 겪은 배반과 악행의 대표적 사례가 일제시대 주정수 원장이었습니다. 주정수 원장도 조백헌 원장처럼 원생들의 복지를 말했습니다. 주원장은 원생들의 낙원 건설을 장담했습니다. 주원장의 꿈과 열정에 감동한 원생들은 열심히 그를 따랐습니다. 주원장의 의도와 지도대로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병원과 섬은 획기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차츰 주원장은 절대적 지배자가 되었고 원생들은 피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주원장의 욕심과 목표는 더 노골적이고 더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주정수 원장은 악랄했고 그 위력에 아부하는 원생들의 배신과 반목은 처참했습니다. 원생들의 낙원을 만들겠다던 주원장의 큰소리와는 정반대로 섬은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원장은 낙원 건설을 위해 의욕적이었습니다. 원생들은 낙원 건설을 위해 계속 되는 부역에 노예처럼 끌려 나갔고, 고통을 견디지 못해 섬을 탈출하는 사람마저 생겼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만든 천국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이 주원장 동상을 세우고 그 동상에 참배를 강요합니다. 주정수는 원생들의 ‘천국’이 아닌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현장은 비단 주원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원장들이 다 그랬습니다.


이런 과거의 역사를 알게 된 조백헌 원장은 원생들에게 지난날의 악몽을 씻고 내일을 바라보자고 설득합니다. 조원장은 자신의 목숨까지 건 맹세를 하며 진정성을 호소합니다. 원생들은 조원장의 목숨까지 건 맹세를 받고서야 비로소 바다 매립 간척사업계획을 통해 ‘그들의 천국 사업’에 동의합니다. 간척사업을 하는 동안 원생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조원장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수단으로 병원을 가꾸고 소록도를 가꾸었던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백헌 원장의 야심이 하나 둘씩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조백헌 원장은 병원을 떠나게 됩니다. 이유는 조원장의 내심을 아는 사람들의 반대와 이를 상부의 명령으로 자신의 꿈을 완성하지 못한채 조원장은 섬을 떠납니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섬을 떠나가는 조원장의 초라한 뒷모습을 그리며 있습니다. 야심의 허망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부 섬사람들이 퇴임하는 조원장에게 아부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나약한 인간상을 보여줍니다.


소설’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라는 구체적 섬을 무대로 그 섬의 주민들인 나환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조백헌 원장은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8년 가까이 소록도병원장을 지낸 조창원씨가 모델이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나환자 선수들과 일반 선수들과의 축구 경기나 오마도 간척사업 등은 조창원 원장 시절 실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작품에는 정치적 알레고리도 있습니다. 소설 첫머리에 군복을 입고 병원장으로 부임하는 조원장 모습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유비됩니다. 이 작품을 실화(fact)와 소설(Fiction)의 결합, 즉 팩션(Faction)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인간의 악함과 나약함을 고발한 수작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당신들의 천국’! 국가나 사회나 기관의 리더들이 주창하는 그들의 천국이 누구를 위한 천국일까요? 이청준은 왜곡된 의도와 동기를 가진 지도자 그들의 천국이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원생들을 설득하고 동원하여 병원장들이 세우려고 했던 “천국”은 결국 병원장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가요? 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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