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면려운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CE
‘세계면려회 일원’ 자의식 갖고 시작
한국장로교 청년운동 위상 높였다
제72회기 기독청장년면려회전국연합회(회장:윤경화 집사·이하 전국CE) 주최로 한국CE 100년 역사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고, 역동적인 미래를 위한 과제를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6월 26일 광신대학교에서 열렸다. 본 지면에서는 학술대회에 발표된 기조강연과 주제발표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1921년 조선기독청년면려회 창립부터 1938년 해산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면려회 창립 발전 해체까지를 집중 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조선CE는 3·1독립운동 이후 당시 젊은이들 가운데 일고 있던 민족의식의 열기와 부흥에 대한 열기에 힘입어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다. 겨레와 함께 하는 교회, 민족의 아픔에 뛰어드는 교회상을 통해 기독교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을 때 면려회가 창립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족의식, 부흥, 사회계몽, 젊은이운동으로 특징되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면려회 창립과 저변 확대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둘째, YMCA YWCA 감리교엡윗청년회가 그렇듯이 면려회는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단체가 아니라 1881년 미국 메인주에서 시작된 세계면려회운동의 일환이었다. 1921년 1월 23일 처음 창립된 것이지만 국내에 이미 새문안교회면려청년회, 신문내교회면려청년회, 승동교회면려청년회, 사리원면려청년회, 북청기독면려청년회 등이 조직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장로교만 아니라 감리교 침례교를 비롯해 각 교파의 청년회 조직이 미국 면려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만국면려회는 한국 젊은이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셋째, 면려회가 전국적인 청년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의 각 지교회 당회, 노회와 총회의 지도 및 재가 하에 운동을 진행하였고, 이미 기성 청년회 조직을 면려회 조직으로 명칭을 통일하여 나갔고, 무엇보다 안대선 선교사의 노력으로 교회를 위한 단체와 조직으로 굳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넷째, 면려회는 처음부터 전 세계 면려회의 일원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활동하며 교육을 시켰다. 일제의 탄압과,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민주적 절차를 거치며 임원을 선출하고 지방연합회와 전국연합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서구 민주사회의 의식과 민주의식을 호흡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섯째, 필자는 안대선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 안대선은 조직이나 대회 구성에 있어서 자신이 회장을 맡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초지일관 총무로서 면려회 발전을 위해 일선에서 자료를 준비하고, 면려회 정신을 고취하고, 지도자들 양성하고, 교회발전을 위해 면려회가 변함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였다. 안대선의 섬김의 리더십에 기초한 면려회의 아름다운 정신과 역사와 전통을 이 시대에도 살려간다면 면려회는 복잡하고 다원화된 오늘의 시대에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여섯째, 면려회는 한국장로교의 청년운동 위상을 높여주었다. 감리교 엡윗청년회, 성결교의 신생청년회와 더불어 장로교의 면려회가 대표성을 지닐 수 있었다. 조선청년면려회는 전국적인 네트워크이자 아시아네트워크로, 그리고 전세계 만국청년면려회 일원으로 세계와 호흡할 수 있었다.
일곱째, 면려회는 1차적으로 신앙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사회계몽운동을 통해 금주운동, 한글운동을 통한 문맹퇴치, 청소년운동으로의 확산, 농촌운동 등을 통해 교회의 발전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와 민족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주지하듯이 면려회의 사회계몽운동은 철저하게 신앙에 토대를 둔 것이다.
마지막으로 면려회 발전을 위해서는 역사적인 평가와 연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면려회 창립 100주년을 맞는 이 중요한 시점이 면려회의 향후 100년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모멘텀이 되기를 소망한다.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