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로의 기독교 이동 반영
페루 시민권을 가진 미국 시카고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미주 전역의 복음주의자들은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 선출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새 교황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고 크리스채니티 투데이가 보도했다.
시카고 교외에 있는 노던신학교의 복음주의 교수진은 교황 레오 14세가 시카고 시민이라고 주장하며 기뻐했다고 한 교수가 전했다.
미국의 라틴계 복음주의자들은 레오 교황이 첫 교황 연설의 일부를 스페인어로 한 것에 대해 자부심과 함께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서 교황으로서 첫 연설을 한 레오 교황은 “사랑하는 치클라요 교구”에 전하는 인사를 스페인어로 했다.
그는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라틴어, 독일어에도 능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라델피아의 복음주의 지도자 셰인 클레이본은 레오 교황이 빌라노바대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필라델피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주 전역의 복음주의자들은 지역적 자부심과 함께 새 교황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그를 교회 지도자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종교적 대화, 세계 정치, 기독교 가르침에 대한 세계인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본명이 로버트 프레보스트(Robert Prevost)인 69세의 교황 레오 14세는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성인 시절의 대부분을 미국 밖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로 보냈다.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후 바티칸으로 자리를 옮겨 중요 직책을 맡았다.
많은 사람들이 레오를 미국 출신의 첫 교황으로 축하하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 복음주의 전문 연구가인 제임스 매디슨 대학교의 종교사학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그의 라틴아메리카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커크패트릭은 “프레보스트는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프란치스코에 이은 또 다른 글로벌 사우스 교황의 연속성으로도 볼 수 있다”며 “미국이나 권력층을 중심으로 하는 교황직과는 거리가 먼, 전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프란치스코의 강조점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시아 지역에서 경제 발전 정도가 낮고, 사회·정치적 환경이 불안정하며,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들을 지칭한다.
교황 레오 14세의 즉위 소식이 전해지고 전 세계가 그의 삶과 사역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격려를 보냈다.
특히 미국 기반 전국라티노복음주의연합의 대표 가브리엘 살게로는 “라틴아메리카 기독교 현실과 이민자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교황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며 “교황은 친이민, 친가족, 친빈곤 등 우리 복음주의 공동체와 공통점이 많다. 우리는 전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종교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살게로는 레오 14세라는 이름은 산업 혁명 이후 노동 빈곤층을 옹호한 것으로 유명한 레오 13세의 모범을 따르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레오 13세는 미국 가톨릭대학교를 설립했다.
천 년만에 비유럽 출신 교황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3년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인 프레보스트를 고문으로 지명한 바 있다.
페루 리마에 있는 파시피코대학교의 역사학자 후안 폰세카 교수는 “이번 선출은 페루와 같은 주변국 교회의 주변부 출신 주교를 바티칸의 중심부에 배치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프레보스트가 귀화 시민이 된 페루에서도 그는 변두리에서 일했다.
1985년 페루에 처음 도착했을 때 프레보스트는 에콰도르 국경 근처의 인구 4만여 명의 사막 마을인 출루카나스에서 잠시 봉사했다. 1986년에는 로마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교황청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페루를 떠났다. 1988년부터 1999년까지는 트루히요 북부 교구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그리고 1999년에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간 그는 2014년까지 남미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해 페루 북부에 있는 60만 명의 해안 도시 치클라요 교구의 사도 행정관으로 임명되었고, 2015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주교로 임명됐다.
하버드 신학교의 세계 기독교 순회 강사인 지나 줄로는 이번 레오 교황 선출은 세계 기독교의 이동에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1900년에는 가톨릭 신자의 73%가 유럽과 북미에 거주했으나 지금은 25%만이 유럽과 북미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글로벌 사우스에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줄로는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 사우스 출신의 누군가가 가톨릭교회를 이끌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황이 미국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미국에는 기독교 이민자가 많고 직장, 학업 또는 선교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기독교인의 수가 많기 때문에 미국 기독교도 근본적으로 글로벌하다고 줄로는 주장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레오 교황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정한 방향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으며, 레오가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렇게 보지 않는 시각들도 없지 않다.
월드 릴리프의 옹호 및 정책 담당 부사장인 매튜 소어렌스는 “가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은 이미 이민자와 난민을 돌보는 것과 같은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서는 함께 일하고 있다”며 “복음주의 기독교와 신학적 차이는 있지만, 성경에 뿌리를 둔 이민자의 복지에 대해서는 공통 관심사이므로, 앞으로도 가톨릭 형제자매들과 계속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레보스트는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에 기반한 페루 주교단의 인권 옹호 기구인 사회행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평소 자신을 선교사라고 표현해 왔다. 2003년 바티칸으로 발령받았을 때 치클라요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나는 선교사이며 파송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황이 되기 전 몇 안 되는 인터뷰 중 하나인 2023년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를 선교사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데이빗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