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29, 2024

[박헌승 목사 칼럼] “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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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승 목사(캐나다 서부장로교회)

정오에 산책하러 교회 옆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추석이 지난 9월 하순인데도 날씨가 무더웠습니다. 아직 여름인가 착각할 정도입니다.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나무 밑 벤치에 앉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나홀로 조용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살갑게 부는 바람이 내 마음을 만져주는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지만, 세미한 주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눈을 감았습니다.

한참 후에 눈을 떠보니, 내 앞에 있는 나무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바람에 넘실거리며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클 수가 없었습니다. 20년 전에는 작았는데, 어느새 커버렸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늠름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그동안 무심했던 내가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나무야, 내가 너를 몰라보았구나. 너는 모진 비바람, 추위를 이기고 작렬하는 태양 빛 아래에서 이렇게 훌륭하게 컸구나. 고맙다. 나무야. 미안하다. 나무야.” 나무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이제라도 나를 찾아줘서 오히려 고마워요”

아름드리나무의 둥지, 기둥, 줄기, 가지, 잎을 바라보니 새삼스럽고 신기했습니다. 훌쩍 지나간 세월, 알게 모르게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나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데, 항상 내 곁에 있어 주는 나무가 감사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혼자 외로웠을 터인데,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준 나무가 나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잘 웃어주는 변함없는 친구와 같아 좋았습니다.

벤치에서 일어나 나무를 만지며 인사를 했습니다. “나무야, 또 보자. 내일 또 올게. 우리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자.”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에서 절망하던 엘리야를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묵상하던 나다나엘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시편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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